◆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의 차이가 뭔가요?

저도 한때는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차이가 '엉덩짝'과 '궁둥짝'의 차이만큼이나 미미한 줄 알았습니다. 또 '미스터리 스릴러'와 '서스펜스 스릴러'의 개념은 - '이하늘'과 '이근배'가 그러하듯이 - 처음부터 따로 존재하는 둘이 아니라 같은 대상을 다르게 부르는 두 개의 이름일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미미하긴 하지만 엄연히 차이가 있고 그 이름을 구분해서 부르는 게 적어도 코딱지만큼의 쓸모는 있는 일입니다.


질문에 답하기 전, 제가 FILM2.0 기자 시절 쓴 터무니없는 칼럼 '궁금증 클리닉'을 모아놓은 어처구니 없는 책 <헐크 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를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다행히 260쪽에서 263쪽 사이 내용에 해답이 들어있더군요(제가 써놓고도 이제와 다시 보니 어찌나 생소해 보이던지요). 이제부터 써댈 글은 6년 전 그때, 제가 검색질로 찾아낸 컨텐츠를 기본 뼈대로 삼고, 이참에 클릭질로 새로 알아낸 사실을 군살로 추가해 작성합니다. 고로, 굳이 제 책을 사보실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물론 그럴 생각도 안했겠지만). 그때 쓴 책 보다 지금 쓰는 내용이 좀 더 많은 정보를 드리게 될테니 말이에요.

재밌는 사실은,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차이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는 게 영화 감독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소설가들입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구요, 순전히 검색 결과만 놓고 보니 그렇습니다. 또 둘의 차이에 대해 밤낮으로 질문을 쏟아내는 것도 대개는 영화 관객이 아니라 소설 독자이더만요. 그렇다고 니가 소설 장르로 감히 영화를 설명해? 미친 거 아냐~? 행여라도 골룸 안영미 선생 같은 매서운 멘트는 입에 담지 말아주소서. 비록 영화와 소설이 그 태생은 다를 지언정 장르 이해에 대한 관객과 독자의 열망만은 동일하다고 판단되기에, 해외인터넷사이트에서 찾아 본 수 많은 소설 작법 강좌가 이럴 땐 큰 도움이 됩니다.


먼저 개념 정리가 필요합니다. 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를 모두 구분해 쓰는 사람은 많지 않더군요. 저도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출판 에이전시 나단 브랜스포드(Nathan Bransford)라는 양반의 블로그(바로가기)에서나 이 석 자를 알뜰히 구분해 놓은 걸 본 정도니까요. 그가 말하길, "미스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마지막 페이지에서 알수 있다. 하지만 스릴러는 범인이 누구인지 첫 페이지에서 알 수 있다. 서스펜스도 범인의 정체를 첫 페이지에서 간파하는 건 스릴러와 같지만 스릴러가 주로 추격전과 액션에 집중하는 반면, 서스펜스는 좀 더 느린 호흡으로 주인공의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이게 앞서 말씀드린 '코딱지만큼의 쓸모'에 해당하는 세 녀석 개념 차이입니다. 보시다시피 미스터리와 스릴러는 처음부터 번지수가 다른 반면, 서스펜스와 스릴러는 같은 번지수에 세들어 사는 아래집, 윗집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찾아낸 많은 자료에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혹은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비교하고 있는데 그럴 때 서스펜스와 스릴러의 설명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말씀. 요걸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서스펜스는 '영화적 기법' 혹은 '영화적 장치'의 종류이고 스릴러는 '영화적 장르'의 분류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같은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고로 서스펜스 뒤에는 스릴러라는 단어가, 스릴러 앞에는 서스펜스라는 보캐불러리가 투명 망토 쓰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국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도 크게 낭패를 보지는 않을 성 싶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스릴러의 차이를 논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자료는 2000년, 트리시 맥도널드(Trish Macdonald)라는 사람이 <스릴러 쓰기 writing the thriller>라는 책입니다. 이 양반, 뉘신지 모르겠으나 둘의 차이를 무려 16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비교하는 개가를 올리고 있다 말이지요.

여기에서도 제목은 'mystery vs. thriller'로 달아놓고 내용에서는 'mystery'와 'suspense'를 비교하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습니다. 서스펜스와 스릴러는 서로 바꾸어 불러도 정체 파악에 별 지장없는, 그래 봐야 불리는 대상만 마음 상하지 부르는 사람에겐 아무 피해없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전진'과 '박충재', '강타'와 '안칠현' 같은 관계임을 증명하는 한 사례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열 여섯 가지나 되는 차이를 여기서 다 소개하기는 제 손가락이 아프고 얼핏 보기에도 눈동자에 와서 촥, 감기는 솔깃한 설명 몇 가지만 옮겨봅니다. 우리에게는 서스펜스보다 스릴러가 장르적 표현으로 더 익숙하므로 여기서는 저자의 허락도 없이(!) 본문의 서스펜스를 스릴러로 바꾸어 쓰겠습니다.

"미스터리는 머리로 푸는 '퍼즐'이고 스릴러는 가슴으로 느끼는 '악몽'이다." "미스터리는 관객을 사건 해결에 동참시키는 '탐정 판타지'를 선사하고 스릴러는 관객을 사건의 당사자로 만드는 '희생자 판타지'를 제공한다." " 미스터리는 관객에게 끝까지 누가 범인인지를 숨기지만, 스릴러는 처음부터 누가 범인인지를 밝힌다." "미스터리의 주인공은 '용의자'를 찾아 댕기고, 스릴러의 주인공은 '배신자'를 찾아 댕긴다." 기타 등등….

여기에 게일 린즈(Gayle Lynds)라는 장르 소설 작가의 인터뷰(바로가기) 중 한 대목을 더하면 둘의 차이가 좀 더 또렷하게 부각됩니다. "전통적인 스릴러는 (곧 벌어질) 어떤 끔찍한 사건을 멈추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스릴러와 미스터리의 차이가 생긴다. 미스터리에서는 이미 끔찍한 사건이 초반에 발생하고, 과연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는 게 나머지 스토리다. 물론 좋은 미스터리는 '누가' 했느냐에 더해 '왜' 했느냐까지 밝혀내지만 말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때 [세븐]은 미스터리 혐의가 짙고 [양들의 침묵]은 스릴러에 더 가깝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세븐]처럼 이미 끔찍한 살인은 발생했고 대체 누가, 왜 그랬는지 밝히는 게 미스터리라면, [양들의 침묵]처럼 누가, 왜 사람 고기를 먹게 되었는지는 미리 다 밝혀놓은 후에 대체 언제, 어떻게 또 그런 짓을 저지를 지 긴장속에 지켜보게 만드니까 스릴러라는 얘기이지요. 같은 기준으로 브루스 윌리스의 정체를 마지막에 가서야 털어놓는 [식스 센스]는 미스터리의 명패를 달고, 하정우가 범인이라는 걸 첫 장면부터 밝히고 시작하는 [추격자]에는 스릴러의 네임택이 붙는 겁니다.

"미스터리라고 부르자니 스릴러가 아깝고 스릴러라 칭하자니 미스터리가 밟히는 영화들"이 하도 많기 때문에 결국 부모성 함께 쓰기처럼 장르 이름 함께 쓰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현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식스 센스]에 스릴이 없던가요? "아따, 내 눈엔 자꾸 죽은 놈들만 보인당께", 아이가 그 말 할 때 얼마나 오금이 저렸게요. '농촌 스릴러'라던 [살인의 추억]은 끝까지 범인이 누군지 말도 안 해주는 데 '농촌 미스터리' 아녀? 이렇게 시비 거는 게 전화 거는 것 보다 더 쉬운 게 바로 장르 구분입니다.

예로부터 장르간 벽이라는 건 '넘사벽'이 아니라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지요. 게다가 한국 영화 마케팅에 종사하시는 창의력 대마왕들 께서는 새 영화 개봉할 때 마다 새 장르 하나씩 만들어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보니 신종 장르가 신종 플루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게 일상다반사. 그래서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자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이름 아래 공생하는 게 이제는 더 이상 신기한 일도 아닌 겁니다.

몇몇 영화 용어 사전을 찾아보면 스릴러라는 항목은 있어도 미스터리라는 항목은 따로 없는 경우도 많아요. '스릴러'에 대한 설명은 대개 이런 식입니다. "미스터리 영화나 범죄 영화 등 주인공의 운명을 둘러싼 박진감과 조바심을 축으로 진행되는 영화를 일컫는 포괄적인 영화 용어"(<세계영화문화사전>(집문당)).

이런 설명 듣고 보면 미스터리가 스릴러의 하위 장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IMDB)에서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별도 장르로 구분하고 있으니 참 헷갈리지요? 하지만 '미스터리'도 그쯤되면 선방한 겁니다. 영화 용어 사전도 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도 '서스펜스'를 별도 장르로 구분하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였으니, 아무래도 세 녀석 중에서는 이게 가장 끗발이 딸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란 무엇인가요? 

옛날에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는 양반이 계셨습니다. 살아생전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달고 다니신 그 분께서 중요한 이바구를 하나 남기셨어요. 이른바 서스펜스(suspense)와 서프라이즈(surprise)의 정의를 내리는 히치콕 할아버지만의 위대한 설명, 바로 이겁니다.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랄(surprise)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은 무의미한 대화도 관객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것이죠. 

관객은 '지금 사소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조금 있으면 폭탄이 터질거란 말이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잔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 때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즉, 그가 말하는 서스펜스의 핵심은 가능한 많은 정보를 관객에게 주는 겁니다. [추격자]의 그 유명한 '개미 슈퍼' 장면이 바로 그런 예가 될 수 있겠지요. 범인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는 관객도 알고, 미진(서영희)씨도 알고, 그 누구보다 범인 자신이 제일 잘 아는데, 오직 슈퍼 주인 아주머니만 모를 때,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이 느끼는 폭발 직전의 조바심! 그게 바로 '서스펜스'라는 말씀. 그래서 서스펜스라는 장치는 스릴러라는 장르와 친구 먹기 좋은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장르 비교 항목 기억하시죠? "미스터리는 관객에게 끝까지 누가 범인인지를 숨기지만, 스릴러는 처음부터 누가 범인인지를 밝힌다." 따라서 '서스펜스 스릴러'는 '쫄깃한 면발'이나 '얼큰한 국물'처럼 앞뒤 수식구조의 몹시 자연스러운 조합으로 들리는 반면, '서스펜스 미스터리'는 '짜장면 짬뽕'이나 '갈비탕 냉면'처럼 앞뒤 병렬구조의 살짝 낯선 조합으로 느껴지는 거지요.

하지만 미스터리 영화도 장르 영화인데 자기라고 왜 관객에게 서스펜스를 안 주고 싶겠어요. 히치콕 할아버지 가르침과 달리 끝까지 정보를 숨기면서도 관객들의 조바심과 긴장감을 자아내려다 보니 나름 변형과 진화라는 걸 하게 됩니다.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는 건 물론이구요, 왜 죽였는지까지 설득해내는 것으로 뭔가 있어보이는 영화의 반열에 오르려 애쓴다거나, [유주얼 서스펙트] 처럼 관객 뒤통수 때리는 막판 반전 큰 거 한 방으로 서스펜스 영화의 잔 펀치에 맞서는 전법을 개발한다거나, 아니면 크게 보면 미스터리 영화이련만 장면 장면은 서스펜스 스릴러의 연출법을 차용하는 따위가 자주 목격되는 변형과 진화의 흔적. 덕분에 요즘 세상에 잘 만든 영화 소리들으려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와 스릴러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처럼 삼위일체로 크로스! 마침내 쫄깃한 장르 융합의 기적을 행하시어, 그 동안 영화 볼 만큼 본 관객들조차 또 보고 싶게 만드는 쾌거를 이룩해야 하는 바. 뛰는 관객 위에 나는 영화가 되기란 갈수록 참 어려운 일이 되어갑니다.





출처-http://today.movie.naver.com/today/today.nhn?sectionCode=MOVIE_TUE&sectionId=228

Posted by Lee, Ho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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